[ yskim]  님이 2011-01-30 오후 9:17:32 에 남기신 글입니다.

  [제목] 뉴스앤조이 기사


목사인지 박사인지 헷갈렸다. 인천 강화군에 있는 주문도에서 만난 서도중앙교회 박형복 목사는 만나자마자 효소, 항산화 작용 등 어려운 용어들을 술술 늘어놓았다. 이렇게 '문명과는 동떨어진' 외딴 섬에서 목회하는 목사의 입에서 화학에 관련된 전문 용어를 듣는 것이 생소했다.

박 목사가 무슨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독학했다. 미생물 관련 자료는 모두 스크랩했다. 미생물과 연관된 방송들은 빼놓지 않고 챙겨 봤다. 관련 서적들도 섬으로 공수해 공부했다. 그렇다고 섬에 틀어박혀 학문에 정진하는 괴짜 목사를 연상하면 곤란하다. 그가 연구에 몰두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친환경 농법을 찾아 나서다

주문도는 모래로 둘러싸인 섬이다. 모래가 바닷물이 지하수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 준다. 그래서 이용할 수 있는 지하수가 풍부하다. 하지만 외부에서 물을 끌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사용한 물이 돌고 돌아서 섬에서 재사용된다. 섬 특성상 농약과 화학 비료, 오폐수가 고스란히 지하로 흡수되고 그것이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도 있다.

박 목사는 주문도의 물이 오염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수가 오염되면 섬에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박 목사는 곧바로 연구에 착수했다. 친환경적인 농사법을 개발하기 위해 효소도 사용하고, 태평 농법도 실험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섬에 적합한 새로운 농법을 찾던 중 박 목사는 EM을 알게 됐다

EM(Effective Micro-organisms)은 유용한 미생물이란 뜻이다. 효모, 유산균, 누룩균, 광합성 세균, 방선균 등 80여 종의 미생물이 들어 있다. EM은 생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악취를 제거하고, 물을 정화할 때도 쓰인다. 음식물을 발효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 음식물 슬러지(sludge : 음식물 쓰레기를 태우고 난 뒤 남는 유기물)로 친환경 퇴비를 만들 때도 사용한다.


박형복 목사는 낡은 미생물 배양 탱크에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EM은 미생물이기 때문에 정확한 비율로 배양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퇴비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박 목사는 2003년부터 6년 동안 여러 방법으로 실험을 거듭했다. 배양을 잘못해서 실패할 때마다 기록으로 남기고 자료를 정리했다. 결국 박 목사는 퇴비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알아냈다.

박 목사는 먼저 교인들을 설득했다. 몇몇 가정에게 박 목사가 직접 만든 EM 퇴비를 나누어주고 사용 방법을 알려줬다. EM 퇴비를 사용하자 수확량이 몰라보게 많아졌다. 감자는 2.5배를 수확했다. 고추, 고구마는 당도가 좋아졌다. 색깔도 나아졌다. 작물을 수확해도 쉽게 부패하지 않았다. 주문도의 농산물을 먹던 주변 섬사람들이 다른 농작물은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EM 퇴비로 농사를 짓자 마을의 환경도 달라졌다. 농약, 화학 비료 때문에 사라졌던 개구리, 메뚜기가 논과 밭에 다시 나타났다. 실개천에서 악취가 사라졌다. EM을 악취가 나는 곳마다 지속적으로 투여한 결과다. 서도중앙교회에서 벌이는 일이 소문을 타서 군에도 알려졌다. 저수지 정화 작업을 하기 위해 박형복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수지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EM을 투여하기로 한 것이다.

박 목사는 마을 주민과 함께 EM 퇴비를 만드는 작목반을 꾸렸다. 많이 만들고 싶지만 퇴비를 생산하고 보관할 공간이 마땅찮다. 그래서 매년 한차례 필요한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서 신청 받은 만큼만 생산한다. 작목반 회원에게는 3,500원, 비회원에게는 4,000원에 판매한다. 처음에는 무료로 나눠 주었다. 하지만 박 목사의 자비로 생산했기 때문에 주문량이 늘어나자 생산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원가 정도의 저렴한 비용을 받기로 했다. 볼음도, 아차도 등 주변 섬에서도 EM 퇴비의 소문을 듣고 주문한다.

농약, 화학 비료로 농사짓기를 고집하는 주민들

처음 EM 퇴비를 보급하려고 했을 때 어려움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60~70대의 노인들이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해오던 농사 방법을 쉽사리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농사를 지을 때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는 것은 주민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1년 동안 직접 1,000평의 땅에 직접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몸소 EM 퇴비의 효과를 주민들에게 보여 주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목사야, 농사꾼이야" 하는 핀잔을 듣게 됐고 농사를 그만 뒀다.

그럴 때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윤정애 권사의 집은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다. 윤 권사는 길 텃밭에 쪽파를 심었다. 그리고 EM 퇴비를 줬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윤 권사에게 "텃밭에 심은 저게 쪽파냐, 대파냐"고 물었다. 쪽파의 성장 상태가 좋아 사람들이 헷갈린 것이다. 윤 권사는 이때다 싶어 EM 퇴비의 효능을 동네 사람들에게 잔뜩 늘어놓았다. 먹어 보라고 직접 건네주기도 했다. 직접 보고, 맛을 본 주민들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전종길 집사가 작목반 반장을 맡고 EM 퇴비를 사용하라며 주민들을 독려했다. 매년 봄 한차례 서울에서 배편으로 음식물 슬러지를 가져와서 포대에 담고, 퇴비 원료를 섞는 일에 교인들 모두가 나선다. 마을 살리는 일에 교회 전체가 동참했다. 그 결과 지금은 주민의 상당수가 EM 퇴비를 사용한다.

마을 주민들은 이제 박 목사의 말을 신뢰하고 따른다. 마을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박 목사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13년 동안 섬을 떠나지 않고 목회를 한 점이다. 섬에 들어온 목회자들은 3년을 버티지 못했다. 기회만 닿으면 더 좋은 목회지를 찾아서 떠났다. 마을 주민들은 이제는 마을을 살리려는 박 목사의 진심도, EM 퇴비의 효과도 알게 됐다.

박 목사에게 EM을 연구한 것을 논문으로 써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정색하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고 했다.

"돈을 벌 욕심으로 했다면 연구한 것을 정리해서 이름도 알리고 돈도 벌었겠죠. 하지만 저는 그럴 욕심이 없습니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선교를 위해서였어요. 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것이 교회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거죠. 그것으로 그동안 제가 들인 돈과 시간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117년 전 믿음의 선조들이 남긴 교회 170여 명이 사는 주문도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다. 지난 60년대에 맏형인 서도중앙교회에서 서도교회가 분립했다. 서도중앙교회는 섬 안쪽에, 서도교회는 항구 근처에 있다. 주문도 주민 대부분은 장례도 기독교식으로 치루고, 헌금도 곧잘 하는 '기독교인'이란다. 몸은 안 따라줘도, 마음은 기독교인이다. 다 선조 덕이다.

주문도는 올해로 벌써 선교 117년째를 맞는다. 섬사람 윤정일이 감리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도외로 나갔다가 전도사가 되어 다시 섬으로 들어온 게 1902년이다. 마을의 유지였던 박 씨 문중이 '야소'를 믿기 시작했고, 그 믿음을 실천해 보였다. 섬사람들과 소출을 공평하게 나누고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1923년 2월, 교인들 각자가 1원씩 모아 한옥 예배당을 건축했다. 추측컨대, 모자란 돈은 박 씨 문중에서 더 보탰을 거라고 한다.

진촌(鎭村)교회, 혹은 진말교회라 불린 한옥 예배당은 4×9칸 크기로 지어졌다. 문이 두 개인데 남녀가 따로 들어와서 따로 앉게 되어 있다. 황해도에서 들여왔을 것으로 추측되는 기둥과 재료들을 사용해서 바실리스크 양식으로 지었다. 특히 종탑이 교회 2층 다락에 있는 양식은 국내의 전통 방식과 다르다는 점에서 고유한 문화적 특색을 갖는다. 그래서 1997년 7월부터는 인천시가 이 한옥 예배당을 문화재 자료 14호로 지정해서 관리해 오고 있다.

지금도 서도중앙교회에서는 이곳에서 새벽예배를 한다. 선조들이 남긴 교회 덕분에 후손들은 덕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후손들은 오랜 세월 고립된 섬마을에 살면서 완고해졌다. 이들과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란 쉽지가 않다. 이는 '세상'이라는 육지와 고립되어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이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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