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철]  님이 2013-12-26 오후 5:54:31 에 남기신 글입니다.

  [제목] 불신앙 (민20:1-13)


불신앙 (민20:1-13). 2013. 12.17(화)


모험을 좋아하는 미국 사람이 걸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3개월 동안 여행하였습니다. 기자들이 그에게 무엇이 제일 힘이 들었느냐? 라고 질문을 하자. 그 사람은 "구두 속에 작은 모래가 들어와서 제일 힘이 들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큰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과정에서 모래처럼 작은 것들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작은 방해요소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넘어 질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 할 것입니다.

육상의 꽃은 약 42km 달리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체육대회가 열리면 맨 마지막 프로그램에 이 대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선수들을 봅니다.
그런데 선수들 대부분은 처음에 잘 달리다가 넘어져서 상처받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힘들다고 달리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주변 경치에 구경하다가 도취되어 경기자체를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상 받을 자격을 상실하게 되고,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에 도중에서 달리기를 포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경주자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잘 달려가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앙생활은 마치 장거리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경주에서도 상 받은 분들은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달린 사람들입니다. 도중에 상상이상의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결과가 나쁘면, 도중에 좋은 결과에 대한 보람은 상실됩니다. 그러나 도중에 기대이상의 좋은 결과가 계속 같은 템포로 좋은 과정을 가진다면,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정도 좋고, 결과도 좋으면, 더욱 보람이 있고 자랑스럽다고 확신합니다.

예를 들면, 400년 동안 노예처럼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해방을 받아 애굽에서 나올 때, 장정이 60만 명이 넘었습니다. 모두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하였으나, 40년간의 긴 여정에 믿음을 상실하고 도중에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도중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가나안 땅에 대한 희망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들어가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고,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그 원인을 분석하고, 우리의 삶에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민수기 20장은 모세의 생애 가운데 가장 슬픈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자기의 누이 미리암을 잃는 아픔을 경험하였습니다. 둘째로 가장 슬프고 괴로운 사건은 아마도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친 므리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픔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80세에 소명을 받아서 120세가 될 때까지, 40년 동안 어려운 지도자의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60만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 그들을 인도하여 40년의 광야방황 생활을 다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감당해 낼 수 없는 위업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 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엄명을 듣게 되었으니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모세가 심한 형벌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계속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에 대한 인간적인 반응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신1:37)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 가라사대,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누이 미리암을 잃고 슬픔에 잠긴 모세와 아론을 위로하기는커녕 도리어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을 세워놓고 공박하였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직설적이고 가혹했습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일하고 수고한 모세를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하다고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돌을 들어 쳐 죽이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점에서 모세와 아론이 실수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총회를 반석 앞에 모아놓고,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10)?”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성질을 내면서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이나 쾅 쾅 쳤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곳에서 물을 흘러내어 사람과 짐승이 함께 마셨습니다.
이 물을 ‘므리바’라고 말합니다. ‘므리바’라는 말은 ‘다투었다’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쳤다는 말은 하나님과 2번 다투었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모세는 엄청난 벌을 받았습니다. 죄를 지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인데, 그 벌을 모세가 받았습니다.

모세는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 한고로(민20: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모세의 불신앙이 원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에 대한 작은 불신앙의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행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더하고, 함께 웃고, 함께 나누고, 함께 즐기는 거룩한 날을 보내도록 소원합니다.


즉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다.


1.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비방)하니라.(민 20:2)
노예의 삶<자유인의 삶,
이 세상의 삶<천국의 삶.
자유인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가 영원히 살 수 있었는데, 지도자인 모세와 하나님을 비방하다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스라엘백성은 달면 삼기고, 쓰면 공격하는 삶의 방법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불평이란 작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에 심혈을 기우리어야 하겠다.

2.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민 20:4)]

주님의 회중: 교인들을 말합니다.
교인들 중에는 Ⓐ. Sunday-Xn,
Ⓑ. Weekday-Xn. Ⓒ. Born-again-Xn.
임원중에 ①. 구경꾼이 있고, ②. 불평꾼이 있고, ③. 일꾼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쪽의 교인인가?
일꾼이 되고, 중생의 경험을 가진 교인들이 되기 위해서
Ⓐ 나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 역사와 교회 앞에 무엇을 남겨 놓을까? 묻고, 답을 찾아 생활로 옮길 때, 좋은 신앙인이 될 것이다.

광야: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먹을 물도 없는 곳이다. 즉 살기에 불편한 곳이다. 어려운 곳이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은 환경이다. 갈등과 회의가 가득한 환경이다. 경제위기로 생활고가 심한 곳이다.
금년도의 세계경제위기의 때. 이때를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생활(:6참고)을 해야 한다.
3.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민 20:8) "
지팡이: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한다(출4:20).열두지파를 말함(민17:6).
오늘날 지팡이는 성경말씀이다. 현대기독교인들은 돈과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것을 우위에 두어야 하는가?
기독교인들은 항상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
①. 말씀에 의한 생활.
②. 말씀을 위한 생활.
③. 말씀 때문에 생활을 할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4. 바데스 광야에서 물을 내게 하는 과정에서 모세의 실수:
1). 출17:7에 나타난 경험 때문에 지팡이를 사용하였다.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이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라고 말했지. 지팡이로 치라고 명하지 않았습니다.
즉 말씀의 위력은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아 솟아나오라"고 말을 해야 했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감정과 경험에 의해서 지팡이로 반석을 쳤다. 왜냐하면, 호렙산에서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쳤던 경험 때문이다(출17:6)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을 내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가 많다. 이것이 실수의 첫째이유이다.
성도 여러분! 내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란다.

2). 둘째이유는 백성에 대한 미운감정 때문에 실수를 하였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20:10)]
[패역한 너희여]란 말씀은 반역자를 뜻한다. 이들에 대한 미운감정 때문에 저들을 저주하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씩 내려쳤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이 아니다. 삶의 위기 때마다 말씀을 붙잡고 묵상 기도하면서,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 미움보다 사랑이 우선이다. 그런데, 미운 감정 때문에 사물을 올바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미움이 앞서면, 해야 할 서명(일)을 볼 수 없고, 사명을 깨달아도 잘 해 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법이다. 그리하면 문제를 풀어갈 지혜를 얻게 된다.
하나님은 지팡이의 신비로움 보다, 모세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셨다.
3). 셋째 이유는 분노 때문에 실수를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 때문에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을 망각할 때가 있다. 이는 우리만의 잘못이 아니라, 성경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모세는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민 20:11).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한대로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나오게 하지 않고, 화를 내며 반석을 두 번이나 지팡이로 쳤다(11절).
모세는 반석에서 물을 얻었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하였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12절).

분노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분노를 지혜와 절제로 다루지 못할 때 자신과 타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순간 내 입에서 나간 분노의 말이 홍수처럼 많은 눈물의 원인이 된다. 그렇게 하여 생긴 상처는 두고두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5.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민 20:9)
순종하여 지팡이를 잡았다. 말씀 때문에 지팡이를 잡았다. 우리는 내가 하고 싶어서 일을 하기 보다든 말씀 때문에 해야 한다. 이것이 순종이다. 소수의 목사. 장로. 권사들이 처음에는 순종하고, 끝까지 순종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자신이 영광을 차지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 내셨더라.(민 20:13)]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거룩함이란
①. 구별된다는 뜻이 있다.
거듭난 사람은 세상 사람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 그 구별된 생활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한다. 이 생활이 거룩한 생활로 나타난다. 이 생활이 곧 섬김의 생활이다. 섬김의 생활로 감리회를 부흥시키어야 하겠다.
②. 부름받은 사명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다.
모세는 자신이 반석에서 물을 솟아내기를 원했다. 모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였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일을 하여야 할 것인데, 그는 백성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였다.
모세는 자기 위치를 망각했다. 자기가 잘나서 이스라엘을 인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기적을 보여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을 들어내지 않으므로 그의 사명은 끝나 버리고 말았다. 믿는 사람은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래서 섬김과 변화로 부흥하는 감리교회를 만들어가도록 여러분을 초청한다. 우리 모두 마음과 삶을 모아 동참하여 감리회를 부흥시키자, 동의하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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