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철]  님이 2013-12-26 오후 5:51:11 에 남기신 글입니다.

  [제목] 기독교와 공산주의 차이(계21:5) - 힐링타임 원고


기독교와 공산주의 차이(계21:5) 12. 11(수).

하나님께서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는 변화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변화되고, 변화시키도록 기도하고 생활해야 할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수 안에서 완전히 변화시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중생입니다. 대부분 기독교인은 현실을 부정과 인간 사회의 현실을 개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인간은 항상 조직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상태에 있다고 기독교인이나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항상 소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 회복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의하지만, 인간 소외의 원인 규명에서는 양자가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인간 소외의 원인을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에 있다고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기독교에선 인간 소외의 원인을 인간의 교만에 의한 각종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점에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불안과 인격분열과 고통을 경험하며, 증오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며 사회적으로는 구조적 악을 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내리신 해산의 고통이 개인의 영역에 속한 심리적이 문제로, 아담에게 노동을 하고, 땀을 흘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소외의 문제에 대해 공산주의와 기독교 모두 매우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절대적인 변화를 주장하지만, 그 실현 방법에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계급투쟁을 통해서 제도적으로 혁명을 일으켜서 해결하려는 것이 공산주의의 방식이며, 공산주의는 세상을 변혁시켜 나가는 동기 부여와 진행 과정에서 언제나 그 주체가 인간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역사의 주체가 되어서 혁명이라는 방법을 통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폭력이 난무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옛 사람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는 것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회를 새롭게 하고자하는 이 동기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변화의 진행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고 사람은 그분의 동역자로 참여한다는 생각이 바로 공산주의와 다른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적 유물사관에 근거하여 필연적으로 자율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기독교는 죄인 스스로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타율적인 인간 변화를 이야기 합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변화의 동기를 가지 주체 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를 떠나 돼지를 치며 고생하던 둘째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집을 떠나갈 때 그의 등 뒤에서 아버지는 돌아올 것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대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탕자는 다시 돌아 왔고, 아버지는 자신을 받아 주실 것이라는 잠재의식을 안고 떠나갔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다시는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고 탕자가 집을 나섰다면, 어찌 그가 다시 아버지를 향하여 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가 돌아갈 수 있었던 힘을 제공한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도 역시 현실의 여러 어려운 조건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현제보다 좀 더 나은 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의 불리한 조건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희망을 갖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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